천국이 어린아이 같은 자의 것이라고 하신 예수님에 대해 기록한 마태는, 여기서 영생을 얻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왔다가 자신의 많은 재물을 더 믿고 의지하는 바람에 실패한 관원이자(눅 18:18) 부자인 청년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. 이 기사는 마가복음 10:17-22과 누가복음 18:18-23에도 기록되어 있으나1) 서로간에 다소 차이가 있다. 이 기사는【16】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로 시작된다. 어떤 사람은 관원이며(눅 18:18) 부자인(19:22) 청년(19:20)이다. 선생님이여는 8:19의 주석을 보라. 여기서는 예수님을 하나님 또는 그리스도로 인식한 호칭이 아니라, 예수님께 대한 존경과 신뢰를 드러낸 호칭이다. 선한은 아가테(ἀγαθέ)이며 원래 도덕적 선을 의미했지만, 칠십인역에서는 하나님께 대해 자주 사용되었다(시 118:1-, 왕상 16:34, 왕하 5:13). 헬라에서는 사람이나 물건의 중요성이나 훌륭함을 나타내었다. 영생은 조엔 아이오니온(ζωὴν αἰώνιον)이며 ‘죽음’(롬 6:22)과 ‘멸망’(갈 6:8)의 반대가 되는 생명이다. 사도 요한은 “영생은 곧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”(요 17:4. 참조: 요일 5:12)라고 하였고, 바울은 “죄의 삯은 사망이요,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”(롬 6:23)라고 하였다. 즉, 영생은 하나님의 자유로운 은사이며, 그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같은 것이라는 뜻이다. 사도 요한 역시 “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”(요일 5:11)라고 하였다. 영생이란 그 명칭이 지시하는 것처럼, 영원한 생명 곧 결코 끝나지 않는 생명이다. 물론, 이 영생 또는 {생명은 스토아 철학에서 말하는 ‘덕으로부터 비롯되는 생명’(βίος κατ’ ἀρετήν)이나, 영지주의에서 말하는 신비적 실
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1) 저자의 마가복음 10:17-22의 주석과 누가복음 18:18-23의 주석을 보라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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